2000

2000년 1번째 이미지
"타이거즈 정신만으로는 힘들다". 모기업의 재정 악화로 팀 사정이 여유치 않았던 타이거즈는 우수 선수의 해외 진출 및 타구단과의 트레이드 등으로 힘든 한 시즌을 보낼 수 밖에 없었다. 57승 72패로 드림리그 4팀 중 승률 최하위, 8개팀 중 6위, 득점 및 홈런 최하위 등 각종 기록에서 최하위를 면치 못했다. 99시즌 그래도 타이거즈는 나름대로 활발한 공격력을 보이며 팀 홈런 및 득점에서 1위에 올라 뭔가 내밀만한 한줄기 자부심이 있었지만 2000시즌에는 총체적 부진을 극복하지 못한 채 맥없이 주저앉고 말았다.
2000년 2번째 이미지
99년 새롭게 도입된 FA제도를 통해 첫 수혜자가 된 이강철은 삼성과 3년간 8억원에 계약을 맺는다. 겹으로 오는 악재에도 불구하고 타이거즈는 4월 한달간 10승 13패를 기록하며 '5할 승부'에 강한 집념을 보였다.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투수가 바로 최상덕이었다. 최상덕은 4월 한달 동안 4경기에 등판, 불꽃 같은 투혼으로 3승을 거두며 이강철의 공백을 훌륭히 메웠다. 하지만 혼자만으로 마운드를 지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팀내 유일하게 10승 투수(12승)면서 규정이닝을 채운 최상덕을 뒷받침할 투수가 타이거즈엔 없었다. 그나마 마무리 오봉옥이 2.86(규정이닝 미달) 의 방어율을 기록하며 꾸준한 활약을 펼쳤을 뿐이다.
2000년 3번째 이미지
홍현우의 부진, 양준혁과 손혁의 트레이드 등으로 타이거즈 방망이는 8개구단 최하위인 0.252를 기록했다. 규정타석을 채운 선수가운데 장성호만이 유일한 3할대(0.324)를 기록했을 만큼 두드러진 활약을 펼친 선수가 눈에 띄지 않았다. 장성호는 3년 연속 3할을 쳐내며 '영원한 3할 타자' '스나이퍼' 등 갖가지 별명을 얻으며 투타가 무너진 호랑이 군단에 있어 군계일학과도 같은 존재였다. 신인 중에서는 김상훈이 최해식의 자리를 위협할 만큼 급성장해 차세대 안방마님을 예약해 놓았으며, 홍세완은 비록 많은 경기에 출장하지는 못했지만 타이거즈를 이끌어갈 차세대 해결사로서의 가능성을 내비쳤다. (사진 - 홍세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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